▲ 무대디자이너 임일진 프로필
Q. 무대디자인을 할 때 연출 및 다른 스태프와 소통을 하는데 그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ㄴ 무엇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인정하는 자세 위에서 모두는 평등한 한 사람의 직업인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공연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누구의 아이디어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아이디어가 공연에 직접적인 기능을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본다. 공연에서 각자의 맡긴 일과 책임이 다를 뿐 업무 경중이 없다는 수평적 자세에서 언제나 가능한 방향으로 긍정적인 소통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문화에선 서로 이런 인식들이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
Q. 창작할 때 아이디어는 어디서 주로 얻는지 ㄴ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믿지 않는다. 아이디어는 순간 떠오르는 것보다는 계속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연출의도와 콘셉트, 그리고 대본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아이디어는 순간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쥐어짜서 나올 때까지 계속 고민한다. 모든 것은 대본에 있고, 언제나 문제는 그것에 대한 나의 입장과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소에 많이 보고, 읽고, 느끼려고 노력한다.
Q. 무대장치는 제작예산과 가장 크게 맞닿아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의도한 바를 포기하거나 그로인한 스트레스 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ㄴ 물론 무대뿐만 아니라 제작 전 분야에서는 예산이 굉장히 중요하다. 정말 하고 싶어도 돈이 없으면 못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현실에 쓰일 수 있는 아이디어와 실현가능성이다. 스텝들과의 소통과 관계가 공연의 일부인 것처럼 예산과의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 역시 공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현실의 조건 위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과 제작을 가능케 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이다.
Q. 한국에서 무대디자이너로서 살아가는데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많은 공연 창작 예술가들이 창작 작업만 가지고 생활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따른 해결책은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ㄴ 어떤 나라도 공연예술가(전업작가)는 고생스럽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전업의 경우 먹고사는 문제로 인해 점점 작업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심해지는 편이다. 요즘처럼 돈벌이 한류만을 생각하는 작품만 대접해주다 보면 클래식이나 전통공연들은 더더욱 먹고살기 힘들어진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작품적인 다양성이 상실된다. 그래서 공연 창작자들의 사회복지, 저작권, 근무환경 개선 등 인식의 전환보다는 공연제작 시스템의 실천적 변화와 개혁이 절실하다. 기본적인 작업환경이 보장되고 정정당당한 예술적 경쟁이 가능하다면, 생활을 유지하고, 못하고는 철저하게 예술가 개인의 능력문제라고 생각한다.
Q. 극단을 차린 걸로 안다. 어떤 생각에서였는가? ㄴ 친동생이 얼마 전 독일에서 긴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다.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연극학 박사학위를 받고 와서 연출가로서 활동하려던 참에 제가 평소 해보고 싶었던 포스트드라마를 해보려고 이 기회에 하나 차렸다. 포스트드라마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워낙 생소한 현대연극분야여서 연극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재미도 없고 흥행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선뜻 제작하기 힘들다. 그래서 함께 작업할 연출가나 극단이 마땅히 없었다. 이번 기회에 '망할 때 망하더라도 해보고 싶은 연극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도전하게 되었다.
Q. 포스트 드라마가 무엇인가? ㄴ 포스트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극적인 관점은 '재현'이 아닌 '현존', '경험'을 나누는 것이 아닌 '공유', '결과'보다는 '과정', '취지'보다는 '선언', '정보'보다는 '에너지'다. 특히 브레히트의 작품이 포스트드라마적인 성격이다. 이번 작품은 브레히트의 '대서양 비행횡단' 과 '동의에 관한 바덴의 학습극'을 각색한 작품이었다. 포스트가 기존의 드라마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무언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나라와 같은 공연환경에선 이런 작품 하면 무조건 망한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다양한 예술을 제공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점점 이런 연극이 활발해지면 다양한 작품들이 공존하는 계기가 되고 종래에는 어느 정도의 흥행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Q. 무대디자이너가 되겠다는 후학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ㄴ 무대디자이너는 영역이 넓고 알아야 하는 것들도 많다. 안타깝게도 많은 친구는 무엇을 디자인하는가에만 관심이 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세부적인 것을 결정하는 데만 관심을 쏟는 것 같다. 무엇을(무슨) 디자인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방향의 작업'을 하고 싶은가'이다. '무엇을 디자인'하는가 보다는 '어떤 디자인'을 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주목하면서 본인만의 가치와 세계관을 만들어 가는데 힘썼으면 좋겠다. 이렇듯 건강하고 다양한 가치위에서 무대미술가는 아티스트이면서 동시에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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