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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글하고 쫀득한 연극 '무촌(無忖)' 2017-05-16 07:10:49
그냥커피 조회3,458
<무촌 (無忖)>
얼핏보고 무당이 사는 마을이야기인줄 알았다.
작명은 이래서 중요하....다.. ..헛헛;;;
‘무촌(無寸)’ 은 촌수가 존재하지 않은 부부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촌수를 따지는 촌은 ‘마디 촌(寸)’이라고 하는데 가족이나 친척이 얼마나 매듭을 가졌는지로 가깝고 먼 정도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1촌, 즉 한 마디의 거리를 갖는 관계이며, 형제지간은 2촌으로 두 마디의 거리를 갖는 관계다.
그러면 ‘무촌(無忖)’은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 것일까? 피를 나누지 않은, 헤어지면 아무것도 아닌 관계라는 것일까?
연극 ‘무촌’은 부부의 사랑, 아픔, 이별 등에 관한 이야기이다.
극을 대표해주는 문구 중에 와 닿는 말이 있어 이를 옮겨본다.
"내 앞에 행복이 온다는 예상이 있다.
예상은 예상일 뿐이다.
대신에 시련이 온다 하더라도
인생을 마주하고 사는 우리는
웃으면서 살면 좋지 않을까 싶다."
<실전 같은 현실감 >
이 연극을 보면서 재미난 것은 한 번쯤 겪어 보고 한 번쯤 곱씹어 생각해 본 묵직한 삶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정말 사실적이다.
삶의 성찰이 누적된 대사들은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며 매력적이며 스타일리쉬 하다.
할 수만 있다면 대본을 구입해 나무 그늘 아래서 찬찬히 그 생각들을 공유하며 음미하고 싶다.
연극 '무촌'의 압도적 한 장면
<이런 친구 어디 없나? >
등장하는 배역은 부부와 그들 각각의 친구였거나 친구가 된 사람이다.
부부의 이야기가 이 연극의 핵심인데 내심 이 친구들 굉장히 탐이 난다. 살면서 이런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뭐 인생 부러울 것 없을 것같다.
한 친구는 주인공의 감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물러나 있지도 않는다.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봐주고 들어주고 안아준다.
또 한 친구는 오지랖도 광활하며 친구 일에 적극적이다. 개입하고 조언하고 술 마시고 담배를 나눠 핀다.
그리고 항상 같이 고민해 준다.
둘 다 갖고 싶은 그런 친구의 모습이다.
극의 이야기는 아련하고 슬픔 속에서 헤매지만 정작 좋은 친구를 얻었고 결국 진정한 사랑도 얻은 샘이 된다. 보고 나면 기분이 즐겁고 유쾌해진다.
이거 환상특급인가? ^^
연극 '무촌'의 무대
<경험과 상상>
극단 ‘경험과 상상’의 연극은 굉장히 재미있다. 극이 만들어 내는 긴장의 이완이 고무줄처럼 자유롭고 탱글거리며. 속도감의 완급이 재미와 갈등으로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텐션(tension)을 보는 느낌도 굉장하다.
극도 훌륭하지만, 연출과 배우들이 만들어 내는 캐릭터들의 쫀득한 생생함과 사랑스러운 모습들은 이 극단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에서 그것이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
매번 느끼지만, 무대와 소품 사용도 정말 뛰어나다.
무대를 넓게 사용하며 사방팔방에서 등장하고 퇴장하며 만들어 내는 배우들의 동선은 자유롭고 입체적이다. 관객은 그 공간에 흡수된다.
남아있는 인물과 퇴장하는 인물의 시선이 맞닿지 않고 비켜나니 공간이 뒤틀리며 입체적으로 변해 관객을 상상하게 한다. 무대 소품은 관객의 상상 속에서 확장되고 변화된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천 조각들은 배우의 손길이 닿으면서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연극의 백미는 상상과 은유에 있음을 이 연극은 너무나 잘 이끌어낸다.
극단 ‘경험과 상상’의 연극을 찾아보게 되는 이유는 이런 것이고, 그 상상과 은유의 짜릿함은 정말 좋다. 보고 난 후 그 향이 잔잔히 오래가니 그 또한 마음이 즐겁다.
꼭 질 좋은 흑맥주의 맛 같다.
연극 '무촌' 배우, 관객과의 대화
극단 경험과 상상의 연극은 대부분 3주간에 걸쳐 극단의 세 팀이 일주일씩 나눠 공연한다. 매주 다른 느낌의 극을 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필자는 두 번째 팀의 공연을 봤다.
이번 주엔 세 번째 팀의 공연을 보러 가려고 한다. 첫 번째 팀의 공연을 놓친 게 내심 후회된다.
<無寸? 無忖! >
무촌은 0촌이란 뜻이다. 한 마디의 거리조차 갖지 않는 관계다.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한다. 마음도 한마음이고 몸도 같은 몸이어야 한다.
무촌의 뜻은 부부 사이는 거리를 갖지 않는 매듭 없는 관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포스터 제목 무촌 ‘촌’의 한자가 ‘마디 촌(寸)’이 아니라 ‘헤아릴 촌(忖)’이다. 부부는 서로가 헤아려야만 부부이지 헤아리지 않으면 부부라 할 수 없다는 뜻을 작가는 몰래 남겨둔 것은 아닐지..끝없이 헤아려야만 부부라는 것을 그리 살포시 남겨둔 것은 아닐까 싶다.
<연극 '무촌'>
작품명 : 연극 <무촌>
공연기간 : 5월4일-5월21일 / 매주 목금토일
공연시간 : 평일8시 주말4시
관람연령 : 중학생 이상 관람가
런타임 : 80분
공연장소 : 창작플랫폼 경험과상상
제작/주관 : WAVE & 극단 경험과상상

플티 리뷰단 이재열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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