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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화수분은 어디에? 연극 ‘마법의 꽃병’ 2017-06-18 21:15:01
그냥커피 조회2,896
[화수분이란?]
1925년, 전영택의 단편 소설 '화수분'은 당시의 어둡고 가난한 시절의 비극적 현실을 사실주의적 수법으로 그린 이야기다.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해 날품팔이를 하며 가난하게 살아가던 주인공 '화수분'은 고향에 사는 다친 형의 부탁을 받고 아내와 아이를 남겨두고 시골로 내려가 일을 돕는다. '화수분'을 기다리던 아내는 남편을 찾아 나선다. 외딴 한길가 소나무 아래에서 간신히 만난 두 사람은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겨울 밤 동사하게 되는 굉장히 처절한 이야기이다.
화수분은 '河水盆'이란 말에서 파생되어 '貨水盆'으로 정착된 말이다. 진시황 시절 황하의 물을 담은 물통이 하도 커 써도 써도 줄지 않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물을 담아 두는 그릇'에서 시작해 '재물이 솟아나는 그릇'이란 뜻으로 옮아간 것이다.
전영택은 화수분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반어적으로 비틀어 일제강점기 당시의 비극적 사회상을 강하게 비꼬았다.
'화수분' 강병호 화백 일러스트
[연극 속으로]
연극 '마법의 꽃병'은 전영택의 소설과 진시황 전설 모두의 화수분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시놉시스는 이렇다.
반지하 단칸방을 전전하는 가난한 신혼부부는 돈이 곧 자신의 지위라고 생각하는 기득권의 갑질에 고통받으며 살지만, 사랑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법의 꽃병, 화수분을 발견하게 되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 된다.
이 연극은 앞서 언급한 전영택의 소설처럼 비극으로 이야기를 그려가지 않는다.
오히려 돈과 갑질로 유발되는 삶의 고통을 잊으려는 듯 진통제 가득 머금은 몽롱한 코미디극으로 만들었다.
극에 등장하는 화수분(꽃병)은 주인공의 고통만큼 그 마법이 작동한다. 육체적 고통에서부터 시작해 정신적 고통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학대해야만 그것이 재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자본이 사람보다 우선되는 우리 사회가 갖는 어둡고 모순된 이면을 아무렇지 않게 툭 던져놓듯 블랙코미디로 비꼬아 놓았다.
더불어, 고통을 감내하며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면 어떤 것이든 성취할 수 있을 그런 화수분 하나씩은 우리 마음 속에 지니고 있지 않는가 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이야기한다.
'신포도 컴플렉스'(soul grape complex)로 치부하며 외면해 버리고 싶은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져 있는 오늘의 우리 사회.
소설 '화수분'에서 한치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 연극 속 진통제 같은 한바탕 난장으로라도 잠시 이 비극적 고통을 멎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극 '마법의 꽃병' 입장권
[연극 '마법의 꽃병']
극단 아루또 02-6012-2511
작, 연출 고석기
출연진
고석기, 홍예나, 김초희, 윤재원, 장슬기, 강소연 등
open run
연극 '마법의 꽃병' 포스터

*플티 리뷰단 이재열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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