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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구십구도, 연극 <밥상머리> 후기_밥상머리 식구라는 건... 2017-07-24 23:38:01
딱따구리 조회2,654




관람날짜 : 2017. 07. 22 7시
관람장소 : 소극장 혜화당
관람좌석 : 자유석 (2열 사이드)


연극 <밥상머리>는 혜화역 소극장 혜화당에서 7월 12일부터 23일까지 했어요.
후기를 올리는 지금은 이미 공연 끝... ㅠㅠ 하지만 정말 좋은 연극, 연극다운 연극이라 정말 추천하고 제 기억에도 남기고 싶어 씁니다.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밥상머리>라는 제목을 보고 드는 생각은 이거였다. 친구들 이야기라는데 밥상이 필요할까? 사실 먹방에 이어 먹는 연기를 하다 끝나는 건 아닌가 싶은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공연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무대가 암전되기 전에 종업원을 만났다. 아무도 없는 식탁을 정리하고, 쉼 없이 들락거리며 긴장하던 모습이 머리에 남았다.

암전이 되며 친구들이 하나 둘 등장하고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게 된 계기도 나온다. 그냥 흔한 친구들의 만남이었다. 고등학교 까까머리 친구들 중 결혼하겠다는 친구로 인해 오랜만에 만난 자리. 왠지 변함없이 즐거울 것 같아 보이는 그 모임. 하지만 그들에게 달라진 건, 하루 아침에 금수저가 된 놈, 고생 끝에 의사 타이틀을 거머쥐진 놈, 사시를 포기하고 보험 영업직 사원이 된 놈 등 많은 것이 변했다. 그들은 이제 서로를 이해하기엔 너무나 먼 사이가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서로의 인생의 고통과 아픔과 아쉬움에 대해 토로하다 점차 갈라지는 우찬과 정수. 그 사이 어쩔 줄 몰라하는 태식. 그리고 이 갈라지는 분위기의 원인제공자(?)이면서 강력한 피해자인 종업원.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고, 모욕하며 자신이 더 힘들다고 말하는 세 친구를 보자, 왠지 떠오르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나를 헐뜯진 않았지만 자신의 고통이, 자신의 노력이 더 고되고 힘들다고 말하자 나는 갑자기 외로워졌다. 우주에 혼자 남겨진 느낌이었다. 아마 우찬, 정수, 태식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학창시절의 즐거움과 고통을 나누었던 친구들이 서로의 짐이 무겁다며 저울질을 하니 당연히 의가 상하는 건 시간 문제. 그렇게 밥상머리에서 일어나 밥상머리를 떠나기도 하고, 주먹다짐을 하며 싸우기도 하고, 열등감을 폭발하기도, 우월감을 드높이도, 또 누군가의 노력은 아무 것도 아닌 것 마냥 치부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안겼다. 과연 이들의 우정이 다시 맺어질 수 있을까...

밥상머리라는 건 신기하다.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음식이 무엇이든에 서로 같은 맛을 공유하며 서로에 대해 가장 깊이 알 수 있는 시간이다. 오죽하면 소개팅에 빠질 수 없는 게 식당이며, 왜 많은 사람들이 맛집을 찾아다니겠는가. 같은 식닥에 빙 둘러 앉아 서로의 얼굴을 보며 먹는 식사자리만큼 관계가 만들어지는 곳은 없다. 비록 이들이 밥상머리에서 관계가 끊어졌지만, 밥상머리이기에 다시 관계가 붙을 수 있었다. 꾹꾹 참아왔던 태식의 솔직한 이야기로 우찬과 정수도 서로에게 쏟은 비난과 힐난을 거두었고, 어느 새 2차 가자며 웃는 조금은 어이없기도, 어색하게 막이 내렸다. 하지만 이게 밥상머리 아닌가? 이게 식구가 아닌가. 피가 이어진 가족과는 벗어나 식사를 같이 하는 식구로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지 않나.


¨능이버섯이란게 천천히 말렸다가 향을 내는 거라며, 우리도 똑같지 않아? 향을 나게 한다며 피말리게 하고는. 근데 향은 커녕...¨


가장 마음 속에 와닿는 대사였다. 물론 정확하지 않지만 능이버섯의 향이 또렷이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앞으로 행복할거라며 계속 피말리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태식의 대사, "니들만 고민있고, 니들만 힘들고, 니들만 똑똑하냐?" 똑똑해서, 더 노력해서, 더욱 높이 올라가서 더 고민했고 더 힘들었고, 더 똑똑했을 것이라는 우리의 착각. 스펙란을 빈칸으로 남겨둘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떠오른 문장이었다. 나의 피땀나는 노력과 고생이 결과가 되지 못함에 눈물나도록 아픈 말이었다.

마지막, 종업원. 종업원의 하루는 왜이리 길고 고달픈 것인지... 극 마지막 그녀의 한숨과 노고가 나에게도 느껴졌다.



본 리뷰는 플레이티켓 리뷰단 1기 고소현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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