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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이방인을 다시 마주친 시간 2018-08-27 09:36:10
블루노트 조회2,549
공연을 보기 위해 늘 대학로를 찾다 오랜만에 산울림소극장의 이방인을 관극하기위해 홍대로 갔습니다. 이방인이라는 단어는 실생활에 쓰이는 일보다 카뮈의 소설로 인식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 한 단어인 것 같습니다. 처음 이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전박찬이라는 배우 때문이었죠. 수개월 전 저에게 강렬하게 남았던 연극 <에쿠우스>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 전박찬 배우의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바로 이 공연 <이방인> 에 뫼르소역으로 출연한다는 소식에 관심이 차올랐습니다. 좋아하는 문학작품과 배우의 만남으로 저에겐 기대충만이었죠.
티켓팅을 마치고 공연장으로 들어갑니다. 소극장이지만 좌석안내를 해주셔서 편하게 자리를 찾아 의자의 몸을 기댈 수가 있었어요. 공연장은 원형으로 되어있고 가운데 관이 하나 놓여있었죠. 시작 전부터 어두운 조명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고 전박찬 뫼르소가 독백으로 대사를 시작합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잘모르겠다"
전박찬 배우의 계속되는 독백으로 연극이 진행되는데 이 부분에서 관객들의 반응이 사뭇 갈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 독백대사가 철학적이고 문학적이어서 금새 빠져들게 되었어요. 이 대사들을 씹고 즐기는 맛이 이 극의 최대 매력이 아닐까요? 과도한 몰입을 이끌어 내는 것이 이 문학작품의 힘인지 연출 때문인지 배우 전박찬 효과인지 판단이 쉽지 않았디만 이 세영역이 시너지를 발휘하며 터졌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네요.
냉소적인 뫼르소의 모습은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치닫는 현대인의 모습과 상당히 닮아있다고 느꼈고 아웃사이더로 살아왔던 제 삶도 투영되어 보여서 그 여운이 오래 갈 것 같아요. 한가지 연기를 뿜는 드라이아이스(?) 는 관람하는데 조금 불편함을 느꼈어요. 그 부분이 없더라도 충분히 좋았는데 말이죠. 하지만 크게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어요.
알듯말듯한 메타포가 널부러진 이 작품을 애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얼마전 관람했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 이 떠오른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아요. 메타포로 버무려진 두 작품은 각자의 해석과 느낌에 맡겨져 수천 수만가지의 생각과 고민을 하게 만들어주어요. 제가 애정하는 작품은 이런 작품들이죠.
좋은 공연 올려주신 산울림극단에도 감사드리고 플레이티켓에도 감사를! 막공전에 기회되면 꼭 한번 더 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모바일로 작성하고 사진도 정상인데 pc 에서는 사진이 뒤집어져 보이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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