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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 미안해 2016-07-20 10:50:23
laoiseau 조회2,735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 미안해

- 내 마음을 아프게 했어요


저마다의 기쁘고 슬픈 그러면서도 아릿한 이야기들이 한 곳에서 어우러진다. 포근하고 안락함을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각 구성원의 어려움이 더 큰 절망감으로 다가오는 곳이기도 하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그곳은 바로 가정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서로의 삶에 어마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엮이고 엉켜있다. 이지러지고 비뚤어져 있는 사랑의 모습으로 서 있다고 해도 괜찮다. 그래도 당신이 있어서 기쁘다 라고 표현은 못 해도 마음속 깊이 온기를 담고 있는 사람들이 당신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17, 내 딸 다혜가 집을 나갔다

무경은 경찰서에 왔다. 딸 아이의 실종 신고를 하기 위해 경찰관의 질문에 이것저것 대답을 하지만 단서가 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아니, 엄마가 돼서…” 혀를 차는 듯한 경찰관 앞에서 무경은 부끄러움도 없이 내 딸을 찾아달라고 속절없이 그렇게 부탁한다. 무경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딸의 친한 친구도, 갈 만한 곳도, 어디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무경은 얼마 전 딸 아이가 사달라던 컴퓨터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여기로 하라는 다혜의 말이 생각났다. 무경은 딸 다혜에게 그간 꺼내 놓지 못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17, 무경 집을 나가다

무경이의 집은 가난하다. 공부를 잘한 무경이는 부산여고에 가서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꾸는 야무진 소녀이다. 그러나 엄마는 그런 무경이에게 그 어떤 공감도 격려도 해 주지 않는다. “작가? 밥은 누가 먹여주냐?”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취직하란다. 문제만 일으키던 삼촌이 대기업에 취직했으니 무경이를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삼촌에게는 누군가의 실수가 절망감이 되어 돌아온다. 무경은 혼자 힘으로 진학을 준비하겠다며 집을 나간다.


눈 감으면 꿈, 눈을 떠도 꿈

무경은 큰 공장의 사무실에서 자리도 없이 눈치껏 알아서 맡은 바 일을 하면서 부산여고에 진학할 자신의 모습을 꿈꾼다. 모든 게 순조롭게 된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직장 동료들이 사회 구조의 변화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첫사랑마저도 사고로 팔을 잃게 된다.

따르뱅이 인생이 된 무경은 잊고 있던 엄마를 찾게 된다.



엄마가 미안해, 넌 아무 잘못 없어

다혜의 행복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생일 케이크도 끄고 단란한 기억이 조각조각 부서졌다. 가정불화, 아빠의 주정과 폭력, 엄마의 부재로 다혜는 집에는 있지만, 자신의 아픔을 공감해줄 이가 아무도 없다. 집에서 쫓겨난 엄마를 어색하게 다시 만났다. 끊어진 시간을 이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보다도 못한 어색한 추임새들로 모녀는 각자의 공간을 점유할 뿐이다. 다혜는 그런 집을 나왔다. 생전에는 아무런 이야기도 없다가 엄마가 갑자기 자기 옛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싫다.

이제 와서 이런 메일들을 쏟아내는 이유를 알고 싶지도 않다. ‘엄마도 힘들었으니까 이해해달라는 건가?’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엄마는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딸 다혜야 엄마에게 한 번만 기회를 줄 수 있겠니?


사랑은 표현을 해야 한다

스탕달은 말했다.

사랑은 아름다운 꽃이다. 그러나 낭떠러지 끝까지 가서 따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을 하는 모두에게 용기가 필요하다. 가족일수록 어쩌면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근미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17세는 가출한 딸에게 엄마가 이메일을 보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소통한다. 뮤지컬이 가진 장점으로 경쾌하면서 무겁지 않게 그러나 진지하게 관객의 눈물을 소리 없이 주룩 흘러내리게 한다.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소품들이며 배우들의 의상도 뮤지컬 17세를 더 돋보이게 한다. 17세 무경과 다혜가 소통하는 부분은 뮤지컬의 관전 포인트이다.

나의 17세는 어떠했나를 생각해봤다. 풋풋한 여고 시절 나에게도 참 많은 희로애락이 있었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생각만큼 녹녹하지 않은 고민하고 있었다. 그 지끈거리는 삶의 고민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말할 줄도 몰랐던 그 시절이 있었다. 그래도 절제된 듯 사랑이 많은 엄마 덕분에 나는 크게 힘들지 않았던 것 같다. 내게 늘 큰 그늘을 드리워주셨으니까.

엄마와 나의 소통 방법은 뭐였나를 잠시 되짚어보니 그때 우리의 소통은 쪽지였다. 엄밀히 말하면 엄마의 일방적인 마음이 담긴 쪽지였다. 내가 쪽지를 쓰고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엄마는 집을 비울 일이 있으면 늘 친필로 쪽지를 남기셨다. 냉장고에 붙여 두기도 하셨고, 거울에도 있었고, 식탁 위에 먹거리와 함께 있기도 했고, 신발장에도 있었고, 간혹 텔레비전에도 붙어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의 그 쪽지가 부재에 대한 불안감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으면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나의 몸짓, 말 한마디, 편지 하나 등 그 모든 표현 도구들이 메신저가 된다. 사랑하는 마음을 누군가에게 조금씩 표현을 한다면 받는 이는 얼마나 큰 삶의 시너지를 얻게 될까? 삶 속에서 좀 더 선한 방향으로 마주 대할 수 있는 길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각자의 삶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곳이기 때문에 가족일수록 그 소통들이 쉬워 보여도 쉽지만은 않다.

부모님의 17세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한 번 마련해 볼까? 분주하다는 핑계로 부모님과 함께 하루 한 끼 마주하며 밥을 먹기도 어려운 요즘 그렇게 자연스럽게 서로의 마음에 품은 따스한 온기들을 들춰보고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말없이 조용히 이불 속만 빠져 나와 사라지지 말고 내일은 간단한 아침 인사 쪽지라도 남겨두고 집을 나서볼까?




"플티리뷰단 1기 이승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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